['화려한 임시직원' 임원의 두 모습] '천인지상' 임원, '임전무퇴' 시대

입력 2015-12-11 19:24   수정 2015-12-11 19:25

월급통장 찍힌 숫자에 깜짝…부장 때 급여의 2배 '껑충'
전용차·집무실·골프회원권…"회사에서 인정받은 느낌"

'임불이년' 조기퇴직에 불안
경쟁 치열…1~2년 만에 퇴직
해고되면 군말 없이 떠나야
금융권 "만년부장이 낫다"



[ 정인설/김일규 기자 ] “회사가 원하는 임원이란 구름 위를 기어오르는 자가 아닌, 두 발을 굳게 땅에 딛고서도 별을 볼 수 있는 巨人이었다”

-윤태호 웹툰 ‘미생’ 중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상무. 입사 22년 만인 이달 초 임원이 됐다. 김 상무는 승진 발표날보다 그 다음날을 잊지 못한다. 회사 총무팀으로부터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은 날이었다. “귀하는 대리기사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었다. 회사에서 나오는 차를 고르라는 연락도 왔다. 기름값에 고속도로 통행료, 수리비 등도 모두 회사가 부담한단다. 책상과 의자도 임원용이 따로 있는지 처음 알았다. 명함 재질도 달라졌고 접대용 탁자도 새로 들어왔다. 김 상무는 “회사에서 대우받고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느낌 때문에 다들 임원이 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100여개의 혜택을 받는 임원

임원이 되면 가장 먼저 월급통장에 찍히는 숫자에 놀란다. 말년 부장 때 받던 급여보다 껑충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부장급 직원은 1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지만 초임 상무는 연간 2억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다. 전무로 승진하면 상무 시절 급여의 갑절을 받고 부사장 월급은 또다시 초임 전무의 두 배로 상승한다.

사무실 차이는 더 난다. 삼성 부장의 사무공간은 7.28㎡(2.2평)인 데 비해 상무는 16.5㎡(5평)를 쓴다. 이사나 상무 같은 초임 임원 때부터 별도 집무실을 제공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이외에 공동 비서나 골프장 회원권도 쓴다. 해외 출장 땐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다. 기업별로 다르지만 임원이 되면 50개에서 100여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자리인 만큼 경쟁은 치열하다. 대기업 임직원 중 임원의 비율은 1% 미만이다. 기업 평가 회사인 CEO스코어 자료를 보면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 전체 임직원 22만명 중 임원 비율은 0.9%였다. LG와 현대차는 각각 0.6%, 0.5%로 더 낮았다.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임원 자리는 한정돼 있다 보니 임원 임기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기업들은 설명한다. 내보낼 사람이라면 60세 정년을 보장하지 말고 40대에 임원으로 승진시켜 빨리 퇴직시키는 게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한다.

올 연말 대기업 임원 인사의 특징은 임원이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도 퇴직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 상무가 되면 3년은 기본적으로 보장됐다. 올해는 아니다. 1, 2년차 상무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그러다 보니 임원을 빗댄 자조적인 우스갯소리도 ㈆?개 나왔다. ‘임원은 2년도 하기 힘들다’는 뜻의 ‘임불이년(任不二年)’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권력은 10년을 못 간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에서 유래됐다.

‘임전무퇴’는 ‘임원이 되면 전부 무조건 물러날 준비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상전벽해’는 ‘상무든 전무든 (목표 미달이라는) 벽에 부닥치면 해고’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이른바 해고 통지서로 불리는 ‘핑크 슬립’을 받으면 토를 달지 말고 떠나야 한다는 ‘임오군란’이란 용어도 있다. ‘임원은 오버와 군소리, 난리없이 떠나야 한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금융권에선 ‘임포자’ 속출

임원들의 조기 퇴직이 확산되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임원 승진을 포기하는 직원도 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선 만년 부장으로 버티기 힘들지만, 은행이나 금융공기업 등에선 어렵지 않게 정년까지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임포자’들은 성과급 비중이 높아 급여가 들쑥날쑥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임원보다 오랫동안 안정된 급여를 보장받는 직원이 낫다고 판단한다.

특히 기업은행,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임포자가 많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따라 작년부터 국책은행 부행장의 성과급은 기본급의 최대 150%에서 100%로 깎였다. 부행장 기본 연봉(약 1억2000만원)을 감안하면 최대 연봉이 3억원에서 2억4000만원으로 줄었다. 세금(38%)과 각종 경비를 제하면 잘해야 1년에 1억원 정도 받는다. 이에 비해 부장급으로 일하다 55세에 희망퇴직으로 나갈 때 받는 위로금이 3억원 이상이어서 부행장 임기 3년간 실질 연봉(3억원가량)보다 많다.

시중은행도 마찬가지다. 희망퇴직 위로금 규모가 커지는 게 임포자를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SC은행은 최근 희망퇴직 직원들에게 법정퇴직금 외 근무 기간에 따라 32~60개월의 특별퇴직금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3억~6억원 정도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 들어 임금피크제가 모든 은행으로 확대되면서 임원 승진을 거부하는 직원 수가 더 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로 임금이 깎이더라도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을 받을 수 있어 대부분의 50대 직원들이 임원 승진을 포기하고 안정적으로 은행에 붙어있기를 원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정인설/김일규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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